건축가의 코멘트: 건축소사무소 이건축연구소 소장 이성란

이건축연구소 대표 이성란

“집의 사용 승인 날짜를 확인해보니 1957년 11월 12일이었다. 1950년대 주택의 일부를 남기며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세월의 기억을 유지하려 했다. 동시에 오피스로서 필요한 기능이 가능한 공간으로 바꾸어가는 작업이었다.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 삼거리로 갈라지는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폐쇄성이 아닌 개방성으로 동네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위치한 것이다.

골목길과 집의 경계를 이루는 담장 대신 폭이 3m가 넘는 계단을 만들었다. 앤디앤뎁과 비마이게스트로 진입하는 출입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일종의 세미 퍼블릭 스페이스다. 장소의 기억을 살리는 것은 두 번째 중요한 축이었다.
1950년대에 건축한 후 1970~1980년대를 거치며 조금씩 변경되었을 것이다. 각 시대별 단독주택의 형태를 보여주는 회색 벽돌 외벽과 지붕, 2층의 테라스 난간 등의 요소를 그대로 살려 여러 시대의 시간성을 중첩시키고자 했다.”

지난해 늦은 여름, 비마게스트는 새로운 사옥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멕시코 대사관 길에 있던 사옥에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뒤편의 가정집을 개조한 곳으로, 한남동에서 또 다른 한남동으로 옮긴 셈이다. 골목길을 걷다가 ‘고향마트’라는 정겨운 느낌의 장소를 발견하고 단번에 마음에 들었는데 우연이 인연이 되어 물 흐르듯 상황이 진전됐다. 기존 사옥 레노베이션에서 믿음직스러운 파트너가 되어주었던 이건축연구소의 이성란 소장이 이번에도 레노베이션을 맡았다. 이성란 소장은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세 갈래 길로 나누어지는 지점 한쪽에 위치한 모습이 마치 동네를 지키고 있는 형상처럼 느껴졌다. 주택을 둘러싸고 있던 담장을 허물고 3m 너비의 계단을 설치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부담 없는 구조다. 계단 자리를 다른 공간으로 이용한다면 그만한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만 김아린 대표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문과 붉은 벽돌 담장을 없애고 그라운드 층으로 이어지는 3m가량의 계단을 설치한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갑자기 환하게 느껴질 정도다. 가로로 긴 회색 벽돌 외벽과 지붕, 2층의 테라스 난간 등은 옛날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기에 오피스와 패션 숍으로 바뀌었지만 가정집의 따스한 느낌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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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게스트를 이끌어가는 김아린 대표. 벽면에 걸린 어머니 양주혜 작가의 그림은 외할머니가 사용하던 누비 원단에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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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응접실은 비마이게스트와 아티초크가 공유하는 공간으로 예술품과 공예품이 곳곳에 정갈하게 놓여 있다. 의자, 테이블 위, 벽면을 장식한 패브릭은 스튜디오 소메Studio SOMEE의 ‘Saliba’로 피크닉 담요로 사용해도 좋고, 가구 위에 걸쳐놓아도 멋스럽다. 카시나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스툴은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Tabouret B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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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장 위의 작품은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Ron Mueck의 ‘Boy’ 사진 에디션.

공간 구성을 보면 지하층(1층으로 보이지만 건축법상 지하층에 해당한다)에는 비마이게스트가 운영하는 프린트 아트숍, 아티초크가 있다. 방문객을 환대하는 듯한 계단을 오르면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게 분명한 라일락나무를 중심으로 작은 정원이 자리하고 1층의 절반은 앤디앤뎁 매장, 나머지 1층 공간과 2층은 비마이게스트 사옥이다. 사옥 1층에는 미팅 룸과 자료실, 키친이 자리하며 2층은 김아린 대표의 개인 사무실과 직원들의 사무 공간, 휴식 공간 등이 위치한 오피스 공간이다. 여러 개의 방과 거실로 이루어졌던 2층 구조를 사무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 핵심이었다. 방문을 없앤 각 이동 공간은 기존보다 넓히면서 아치형의 회랑 형태로 만들어 아늑함을 더했고, 독특한 나무 문양의 벽과 천장으로 된 방은 마감재를 그대로 두어 휴식 공간으로 바꾸었다. 수납공간도 직업 특성상 중요하게 여긴 부분. 예전 사옥에는 체계적으로 수납할 수 있는 시스템 월을 제작했지만 이번에는 공간이 여의치 않아 1층 한쪽에 작은 룸을 만들어 프로젝트별 샘플을 보관하고, 그릇을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는 장식장을 길게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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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벽면 컬러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친 피에르 잔레의 그림 ‘Still life of Esprit Nouveau pavilion’. 작품과 어울리는 색을 르코르뷔지에의 책에서 찾아 주방과 아티초크 외벽의 컬러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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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모던 디자인과 건축을 사랑하는 김아린 대표는 휴식 공간 한쪽 벽면에 르코르뷔지에의 그림 태피스트리를 걸어두었다. 미팅 공간에는 인도의 토속적인 재료와 장인의 공예 기술이 합쳐져 독특한 지역 정서를 풍기는 피에르 잔레의 체어와 라운드 테이블을 함께 두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간 곳곳은 호사스럽지 않으면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예술의 온기를 품고 있다. 김아린 대표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예술 작품과 공예품, 가구가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놓여 있었다는 듯 공간과 어우러진다. 김아린 대표는 이번 레노베이션에서 컬러를 찾을 때 영감받은 것이라며 아끼던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르코르뷔지에의 <폴리크로미 아키텍처럴Polychromie Architecturale>로, 부제는 ‘Color Keybords from 1931 and 1959’였다. 르코르뷔지에가 1931년부터 1959년까지 지은 건축물에 사용한 컬러를 건반 모양의 컬러 팔레트로 구성한 책이다.

“주방에 피에르 잔레의 그림을 두었는데, 그림과 어울리는 색을 이 책에서 찾아 주방의 한쪽 벽과 아티초크 외벽을 구성했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도 훌륭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그림이다. 휴식 공간 한쪽 벽에도 르코르뷔지에 그림의 태피스트리를 걸어두었는데, 왜 그의 그림이 좋은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색감 때문이었다. <폴리크로미 아키텍처럴>을 보면 그가 건축물에서도 얼마나 꼼꼼하게 컬러를 선택하고 조합했는지 알 수 있다.” 2004년에 시작한 비마이게스트는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5명 내외의 소수 인원을 유지하며 1년에 4~5개의 프로젝트로 제한하고 있다. 설화수 플래그십, 백미당, SM엔터테인먼트의 SUM 등 최근 몇 년 새에 비마이게스트가 참여한 프로젝트를 보면 이 작은 회사의 저력이 궁금할 것이다. 비마이게스트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프로젝트의 가장 처음 단계에서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철학을 재정립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파리바게트, 마몽드, 정관장 등과 함께 작업했다. 지금은 눈에 달게 보이는 것이 너무 많은 시대이다 보니 오히려 헤리티지를 간직한 브랜드가 도드라진다. 이미 탄탄한 제품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고 역사만큼 철학도 깊다. 우리가 하는 건 감춰진 걸 꺼내어 다시 한번 읽어내고 사람들에게 ‘역시 멋있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일이다. 회사 웹사이트 첫 페이지에 쓴 ‘We make brands shine’처럼 브랜드를 반짝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아치 형태의 회랑에 기댄 김아린 대표를 카메라에 담고 보니 벽면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 양주혜 작가의 작품으로, 할머니가 만든 누비 원단 위에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니 매일 3대가 한 공간에 있는 셈이다. 언젠가 김아린 대표는 부모에게 받은 유산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무한한 긍정과 따스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살아 있음에 기뻐하는 것’이라 말했다. 새로운 사옥에서 김아린 대표와 비마이게스트가 만들어갈 세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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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없앤 각 이동 공간은 기존보다 넓히면서 아치형의 회랑 형태로 만들어 아늑함을 더했다. 김아린 대표의 사무실과 오픈 형태의 문과 연결된 팀원들의 사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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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되기 이전의 사진을 보면, 야채와 쌀 등의 식료품을 판매하던 고향마트와 주차장이 있던 곳이 현재 아티초크 매장으로 변모했다. 기존의 고향마트는 비마이게스트 건너편 건물로 이전했다. 사무실 이전 후 김희원, 이승재 작가와 함께 고향마트의 추억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기념 파라솔을 만든 이벤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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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층을 오르내리는 나무 계단, 1층에서 아티초크로 통하는 계단 등 비밀 통로 같은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아티초크와 비마이게스트는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곳이지만 서로 이동할 수는 있어야 하기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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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가구숍 덴스크에서 구입한 모빌과 양주혜 작가의 작품. 양주혜 작가는 수건이나 방석, 이불, 침대보 등 일상의 사물에 색점을 만들고 지워나가며 시간을 기록한다.

비마이게스트 사옥
레노베이션 건축사사무소 이건축연구소 yiarch.com
설계 건축사사무소 이건축연구소(이성란, 최재용, 위소혜)
시공 제효건설(이진서), jehyo.com
위치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83-52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