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다니던 중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건축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사무소를 오픈해 주택 설계로 기반을 닦은 후 테이크어반 신사점,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 루소 로스팅 랩, 더멘션 등 F&B 브랜드의 공간 기획과 디자인, 프로그램 기획까지 두루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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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옻칠공예가 허명욱의 ‘용인 작업실Studio at Yongin’. ⓒ박찬우, 브랜딩 컨설팅 스튜디오와 아트숍으로 조성한 ‘비마이게스트 Be My Guest’. ⓒ박찬우, 50년 된 단독주택을 레노베이션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더멘션 The Mansion’. ⓒ이우경

비마이게스트 사옥, 더멘션, 프롬나드 등 요즘 한남동 골목길에서 주목받는 곳에 이건축연구소의 손길이 묻어 있다.

어쩌다 보니 그런 소중한 일이 연이어 생겼다. 내가 유명하거나 잘나서 나온 결과는 아닌 것 같고, 그저 클라이언트가 마음 편히 작업할 수 있는 상대로 날 선택한 것 같다.(웃음) 비마이게스트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김아린 대표의 공간이고, 더멘션 역시 오랜 인연을 맺어온 황수현, 황시연 이사의 공간이다. 프롬나드는 이건축연구소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프롬나드 건물에는 갤러리, 카페, 사무소 등이 모여 있고, 카페는 허명욱 작가가 기획한 한남 작업실로도 운영된다. 이들과 오랜 시간 교류해왔고 서로의 생각이나 취향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더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이건축연구소의 특징을 말한다면 건축과 내부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 이슈까지 살핀다는 것이다. 사용자 체험 요소 계획(look and feel), 유지·관리 계획 등 여러 측면을 검토한다.

건축과 인테리어, 두 영역을 구분 없이 넘나드는 게 이건축연구소의 힘이라고 해도 좋을까?

미국 유학 시절, 건축가가 규모에 상관없이 건물 설계부터 조명, 하다못해 문고리와 커피 잔까지 디자인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 경험 덕분에 상대적으로 건축과 인테리어 그 인식 경계에 상당히 무디게 반응했던 것 같다.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더 많은 때도 있었다. 그런 시간이 쌓이니까 오히려 가구만 살 수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웃음) 그러고 보면 재료를 선택할 때도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외장재로만 사용하는 골강판, 메시, 단파론, 벽돌, 메탈 등을 실내 마감재나 문에 쓰기도 했으니까. 지금도 일할 때 ‘이건 여기에 들어가야 하고, 저건 저기에’ 하는 것처럼 굳이 경계를 짓고 구분하지 않는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는 게 재미있다.

최근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개인적으로 2012~2013년 즈음부터 건축물 재생에 관해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 같다. 골목길, 동네, 도시의 흔적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제일모직 정크야드 프로젝트 파사드 디자인과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하던 때다. 이 과정이 앞으로 이건축연구소가 할 일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인지 장소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에 대해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주택 하나가 시대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벽돌, 화강석, 도시가스 파이프, 대문, 초인종, 이런 작은 요소들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실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부분을 남겨둘 것인가? 남긴다면 보이는 것 이상의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는가? 전체적인 미적 균형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긴다. 지금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나는 시간을 지닌 것들에서 풍겨오는 안정감이 좋다. 그리고 내가 만든 곳에 머무는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정서적인 편안함을 나누고 싶다. 그런 면에서 건축물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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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게스트’ 전면. 1957년에 지은 단독주택을 레노베이션했다. 오래된 가정집이 간직한 세월의 흔적을 전하기 위해 본연의 톤은 차분히 정돈하면서 주변 풍경과의 자연스러운 조화에 신경 썼다. 이에 따라 거리를 향해 상업 공간의 입구를 활짝 열어 적극적으로 도시와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내·외부 디테일에 완벽을 기해 가구와 집기가 채워졌을 때 새로운 에너지가 생길 수 있도록 했다.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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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욱 작가의 ‘용인 작업실’은 쌍둥이 같은 2개의 건물로 구성했다. 옻칠 작업장과 사진 스튜디오, 라운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도한 디자인 어휘를 자제하고 담백한 모습으로 풍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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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준공한 옛 주택을 레노베이션한 ‘더멘션’. 회색 벽돌로 외관을 마감해 모던한 분위기를 살렸다. 꽃과 옷, 가구, 아트워크와 같은 요소를 한 건물에 담으면서도 각 공간의 개성이 잘 드러나도록 디자인했다. ⓒ이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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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정크야드 프로젝트’의 파사드 디자인. 마치 콜라주를 한 듯이 각기 다른 디자인의 문이 한 면에 섞였다. 비이커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의 파사드로, 건축폐기물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프로젝트였다.

특히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 프로젝트는 이건축연구소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좋은 사례로도 꼽힌다.

대전에서 오랜 역사를 지켜온 성심당의 가치가 오롯이 전해지도록 신중하게 외장재를 선택했다. 파벽돌과 징크 소재로 외부를 마감했고, 내부에는 목재를 사용해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강조했다. 과거의 어떤 기억을 남기고 이 시대의 어떤 새로움을 전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그것이 리모델링의 의미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 쓰나?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많이 나눈다. 나와 함께 건물을 지으려는 이유, 공간을 쓰고 싶은 방식, 여기에 더해 그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한다. 그렇게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 다음에 서서히 내용을 구체화해간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마치 기성 제품을 사듯이 완성된 건축물의 모습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게 아니니까. 건축이란 너무도 추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굉장히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더군다나 비용도 많이 든다. 같은 모형을 보더라도 그와 내가 이해한 내용이 다를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답은 대화밖에 없다. 건축가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건축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요즘 관심 있는 이슈가 있다면?

프롬나드로 이사 온 뒤 가드닝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나무, 풀,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그래서 신축을 하건 레노베이션을 하건 부지에 있는 나무는 최대한 고스란히 남겨두려고 한다. 프롬나드 중앙의 모과나무, 비마이게스트 마당의 라일락나무, 허명욱 작가의 용인 작업실 앞 느티나무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나무다. ‘남겨지는 것이 무엇인가’란 관점에서 본다면 자연은 건축에 비할 바 없는 시간을 지닌 셈이다. 특히 요즘은 손으로 하는 노동의 신성함, 직접 만들어가는 가치 등을 귀하게 여긴다.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까 삶의 가치 기준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나?

건축가가 어떻고 디자이너가 어떻다는 등의 직능적 가치를 말하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돼야 할 것 같다.(웃음) 내게 오는 사람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을 담은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고, 또 그들이 내가 만든 공간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또한 도시의 재생이나 건축의 지속성에 관한 가치를 말하는 일을 꾸준히 해보고 싶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