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하게 핀 수국과 핑크빛 결실을 맺은 배롱나무, 단정하게 정리된 농기구들, 일관된 취향으로 채워진 예술 작품….
만약 공간이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여러 단서를 제공한다면, 건축가 이성란의 서초동 자택은 증거 찾기가 더할 나위 없이 수월하다. 건축가라는 업을 떼어놓고도 순도 높은 취향만으로 얘기가 되는 공간. 먼저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기 전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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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노베이션, 가구 디자인, 디스플레이 등 건축이라는 큰 맥락 아래 다양한 창조적 작업을 펼치는 이건축연구소 이성란 소장.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해 마당을 가꾸고 컬렉션한 작품을 일상 공간에서 향유하며 취향 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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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원형 아트월. 식물과 예술 작품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 기분 좋은 환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일모직 정크야드 프로젝트 파사드 디자인(2012), 디자인 퓨처롤로지 서울대 미술관 전시(2012), 럭키슈에뜨 청담동 플래그십 인테리어(2012), 대전 성심당 케익부띠끄 파사드 디자인&인테리어(2013), 루쏘 랩 카페(2014), 라페트 플라워 부띠끄&카페 레노베이션 (2015), 서울패션위크 키오스크 디자인(2015, 2016), 휠라 플래그십 설계(2016), 아스토리아 호텔 레노베이션 인테리어(2016), 헬로우뮤지움 동네미술관 <김데몬>전(2016)…. 이성란 소장은 건축가지만 오히려 전시 기획자나 아티스트 혹은 리모델링 전문 디자이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게 ‘건축’을 얘기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건축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에요. 작은 집을 짓더라도 그 지역이 지닌 사회성, 건축주의 삶, 취향, 주어진 예산까지… 건축가 혼자의 생각으로 지을 수 없죠. 특히 요즘은 인문학적 건축부터 도심 재생, 셰어링까지… 좀 더 다채로운 시각으로 건축을 바라봐야 할 때죠.” 넓은 의미에서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적 ‘콘셉트’보다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키워드를 ‘건축’ 너머의 ‘시간의 가치’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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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쪽의 다이닝 공간. 루이즈 부르주아가 1947년에 출판한 일러스트 북을 2005년 MoMA에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였고, 이를 액자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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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엌에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내 동선이 편리하다.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는 동생 이경아 씨가 직접 찍은 숲 사진과 실제 마당이 대치되는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2 수많은 아트워크 중에서도 정수만 모아 놓은 지하 서재 공간. 소반에 투명 유리 병을 조르르 올려둔 감각이 돋보인다.
3 면, 선, 점의 추상화와 몰딩 형태 오브제, 가구까지…. 수년간 모은 컬렉션의 건축, 인테리어적 요소가 돋보인다.

 

첫 번째 키워드, 재생

우리 사회는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데 너무 익숙하다. 최단 시간에 최대한 짓고 더 비싼 가격에 팔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흐름이 바뀌고 있다. 기존 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새 수명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이라는 화두는 건물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고, 건축으로 인해 삶이 풍요로워지며,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재생 건축 하면 빼놓을수 없는 프로젝트가 바로 한남동의 플래그십 스토어 ‘비이커’의 파사드다. 용산역 근처 철거하는 교회에서 떼어낸 나무 창문, 여전히 단단한 붉은 벽돌, 가스 파이프와 물탱크, 수도꼭지까지 서울 곳곳의 건축 폐기물과 폐가구 등을 콜라주한 파사드는 패션 브랜드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는 동시에 낭비적 재개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업사이클링을 콘셉트로 하는 비이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철거 지역에서 버려지는 건축물의 부분을 모아 콜라주로 재탄생하는 작업을 시도했어요. 시간, 역사, 정신 등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도시 기억의 재생과 방법에 관심이 커졌지요. 그다음 프로젝트로 성심당 리모델링을 맡으면서 ‘새로 짓는 것만이 건축가의 역할은 아니다’는 확신이 들었고요. 그런 생각들이 점점이 모여 사는 집도 이렇게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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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란 소장의 취향이 집약된 지하 서재. 작품은 왼쪽부터 케이트 셰퍼드Kate Shepherd의 ‘Big Ink Tilted Floor’(2008). 상상이나 실제의 이미지를 스케치업 프로그램으로 도면화한 후 나무판 위에 정교한 라인을 표현했다. 가운데 작품은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의 ‘God Nose’(2007). 오른쪽은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중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1991년도에 완공한 주택 단지의 3층 집. 대문을 열면 작은 통로를 지나 너른 마당이 펼쳐지고, 그 시대에 통상적으로 지은 ㄱ자형 벽돌집이 마당을 품고 있다. 이 집이 들어섰을 무렵 그는 지구 반대편에서 해체주의에 탐닉하며, 모던 컨템퍼러리의 영향으로 메탈, 비정형 등 실험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만약 그때라면 이 집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 말하는 이성란 소장. 건축가라면 응당 자신이 직접 지은 집에 살고, 또 그런 집을 매체에 번듯하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클 것이다. “저 역시 날 선 디테일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그런 시기가 지났어요. 또 건축은 ○○해야 한다, ○○○스타일의 강박도 없어졌고요. 학부때 선생님이 모던과 클래식을 병행하는 분이셨어요. 학생들이 당신의 스타일은 무엇이냐고 질문했죠. 그때 하신 말씀이 ‘건축가에게 왜 스타일이 있어야 하나?’ 였는데, 그 의미를 차츰 알겠더라고요. 클라이언트가 모두 다른데, 똑같은 제품 만들 듯 똑같은 스타일, 똑같은 프로그램, 똑같은 설계를 할 수 있나요? 건축물 자체가 품고 있는 세월의 흔적, 기억 등이 오히려 변별력이 되는 세상이죠. 옛 것의 불편함이 오히려 럭셔리로 다가오고요. 리모델링이 손이 더 많이 간다곤 하지만 제한이 있으니 순발력도 발휘하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오래된 건축물에는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재료가 입혀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20년 된 집을 리모델링하는 일은 객관식 문항의 답을 찾듯 순조로운 과정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40년쯤 된 집은 설비와 배관 모두 교체해야 하지만, 다 뜯어버리기에는 아직 기능을 제대로 하는 것들이 있어 예산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바닥 난방을 바꾸려면 말짱한 대리석 바닥재를 모두 교체해야 하니 그냥 두고, 외벽의 벽돌 마감을 그대로 두는 대신 창호를 모두 바꾸는 등 큰 결정을 한 후 세부적으로 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정했다. 거실과 주방에서 모두 마당이 보이도록 구조 변경을 하고, 1층과 2층의 거실, 지하 서재의 천장은 노출해 층고를 높였다. “보통 전원주택을 설계할 때는 탁 트인 공간이 좋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창문을 크게, 많이 내요. 그렇게 하면 외피가 많아져 열 손실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 집은 원래 북쪽에 창이 없거나 작은 구조라 열 손실 걱정 없이 마당이 보이는 남쪽으로 과감하게 기다란 통창을 낼 수 있었죠. 주어진 상황에 맞춘 거지만 실질적으로도 동선이나 시선은 필요한 부분만 확실하게 열어주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선택’과 ‘집중’의 맥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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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양한 허브와 채소를 심은 텃밭과 배롱나무, 겨울이면 실내로 들어오는 화분 식물까지…. 마당 있는 주택으로 이사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원’이다. 정원에서 계절을 만나고,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며, 농사는 정직하지만 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자연의 섭리를 매일매일 깨닫는다.
2 지하 서재와 1, 2층 거실 천장은 노출로 드러냈다. 사선 보가 공간의 구조적 느낌을 배가한다.
3 주방에서 마당으로 연결되는 동선에는 자주 사용하는 농기구와 앞치마, 비옷, 장화 등을 두었다.

 

두 번째 키워드, 일상 예술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자 구조를 결정하는 나선형 계단은 기존 형태와 마감재를 모두 살리고 페인팅을 다시 했다. 하늘을 향해 빙글빙글 올라가는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구부러진 벽에 예술 작품을 걸어놓은, 마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는 듯 공간 곳곳에 걸려 있는 작품이 눈에 띈다. 스타 건축가가 되기 전부터 주의 깊게 봐온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부터 박찬우 사진가의 ‘스톤’ 시리즈, 루이즈 부르주아의 ‘해피 하우스’, 김희원 작가의 ‘누군가의 창’ 시리즈, 애니시 커푸어와 이불 작가의 설치 작품, 김광수 작가의 ‘사과 나무’, 그래픽적 라인이 돋보이는 케이트 셰퍼드의 판화, 김원숙 화백의 브론즈 작품까지 워낙 작품의 양이 많아 컬렉션 기준이 궁금했다.

“이성적으로 분석하거나 카테고리에 제한을 두는 편은 아니에요. 이불 작가의 작품은 제가 해체주의를 공부할 때 상상했던 미래 도시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반대로 김광수 작가의 ‘사과나무’는 그림을 둘 자리에 맞춰 골랐어요. 루이즈 부르주아의 손 사진은 제가 닮고 싶은 손이고, ‘해피 하우스’ 는 의미가 좋아서 선택했고요. 그러고 보니 어떤 식으로든 제가 수십년 걸어온 ‘건축’과 연결 고리가 있거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호하는 것 같네요.”

특히 2층 거실의 TV를 마치 작품처럼, 컬러풀한 작품과 함께 리듬감을 살려 배치한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마치 쇼케이스처럼 집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나선형 계단의 구심점에는 김원숙 화백의 브론즈 ‘레이디 포레스트’와 초록 식물로 만든 헌팅 트로피, 초록색 스완 체어, 폐목재로 만든 피트헤인이크의 의자를 함께 매치했다. 다양한 식물을 벽에 걸어 버티컬 가든처럼 연출한 공간으로, 그야말로 작품을 일상 예술로 향유하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이 집에서 무수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자연스레 예술적 산책을 즐길 수 있으리라.

“아파트도, 주택도 창문과 수납공간이 많으면 그림을 걸어놓을 벽이 없어요. 주방의 소음을 차단하고, 거실에서 바라볼 때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주방과 거실 사이에도 일부러 벽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여행 가면 대표적인 미술관은 꼭 한두곳씩 가잖아요. 기억과 추억이 깃든 나만의 컬렉션, 예술이 특별한 일상이 아니라 이렇게 보통의 일상이라면 생활이 좀 더 촉촉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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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관 입구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왼쪽(남향)으로 마당, 다이닝룸 뒤편으로 주방이 자리한다.새시는 새것으로 교체하되, 프레임은 옛날 구조 그대로 사용했고 거실 바닥과 일부의 몰딩도 기존 집에 있던 요소를 그대로 둔 것.소파는 플렉스폼, 1인 암체어는 비앤비이탈리아, 플로어 조명등은 루이스 폴센 제품이다. 북쪽으로는 창문을 최소화해 전망과 채광, 냉난방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높였다.
2 지하부터 3층까지 나선형 계단을 축으로 ㄱ자로 펼쳐지는 구조. 마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계단 주위로 작품을 배치해 일상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가 크다.
3 박공지붕의 구조감을 살린 3층 아들 방.
4 헬로우뮤지움에서 8월 28일까지 열리는 <김데몬>전의 설치 작품. 아스토리아 호텔 레노베이션 과정에서 나온 옛날 건축자재와 요소들을 계단 형태로 콜라주한 작업이다. 홍순명, 오정현 작가와 협업.

 

세 번째 키워드, 정원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품은 것이 언제인가? 마당 가꾸는 재미에 푹 빠진 그는 요즘처럼 일찍 동트는 계절이면 한 손엔 모자, 한 손엔 호미를 챙겨 마당으로 출근한다. 오래전부터 가족 텃밭에 농사를 지었고, 3년 전 이 주택으로 이사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바로 정원 때문이다. 오랜 지인인 켈리타 최성희 대표와 전국 각지의 농원은 물론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까지 챙겨 가볼 정도. 두 사람 모두 워낙 학구적이라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정보를 공유하는 최상의 파트너다.
주말이면 근처 허브 농원에 갔다가 서로의 마당에 들러 의견을 나누는 등 무엇보다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오랜 친구가 있다는 점이 좋다. 봄, 여름, 가을 절기에 맞춰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게 보람되면서도 또 그때여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 왠지 마음을 숭고하게 만든다고.

처음 정원을 꾸밀 때는 내추럴한 영국 정원처럼 하얀색과 그린으로 색감을 통일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흰색 수국을 찾아 심어도 다음 해에는 핑크로 변하고, 그린색 수국을 찾아 심어도 핑크로 변했다. 흙의 성질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흙과 퇴비의 조합에 따라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단다. 화학 공식처럼 누가 도표로 정리해서 알려주면 좋겠는데 농사는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심해서 씨앗을 고르고, 정성껏 월동시켰지만 꽃 색깔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뽑아버릴 수는 없잖아요. 수국 색깔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정원을 가꾸며 순리를 배운다고 할까요. 건축물도, 인테리어도 또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예요. 건축가인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아파트를 고집하던 남편에게 서운하기도 했고, 아이의 뜻이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니까 이해할 수 있죠.”

 

네 번째 키워드, 협업

이성란 소장은 건축가지만 다수의 인테리어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지금에야 건축가가 인테리어까지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인테리어, 디스플레이는 코디네이터가 하는 일로 터부시되곤 했다. “건축은 오픈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에요. 정해진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인사이트가 필요한 것은 물론, 하나의 건축물을 구현하기까지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이 필수이기 때문이죠. 가구 소품 디자인은 물론 패션 디스플레이, 결혼식 같은 일회성 이벤트 설치 작업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건축가라는 한계에서 벗어났다고 할까요? 구조적 완성도를 챙기느라 실험적 디자인을 펼칠 수 없었다면, 어느 정도 대리 만족도 되는 것 같고요.”

2015년, 2016년 서울패션위크 때 우산으로 키오스크(공공 장소에 설치하는 터치 스크린 방식의 정보 전달 시스템)를 제작했다. 예산의 한계, 기간의 한계, 또 설치 후 재사용 아이디어까지… 일반 설계 작업과 다른 과정으로, 오히려 직원들과 함께 구상하고 고민하고 실행하는 협업을 즐겼다. 8월 28일까지 헬로우뮤지움 동네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김데몬: 협동시도> 전시도 재미있게 작업한 것. 그가 관심을 갖는 ‘도시 기억의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침 인테리어 설계중이던 아스토리아 호텔을 철거하면서 나온 흔적을 패치워크해 조형물을 만들었다. 비상 철제 계단을 중심으로 한실 방에서 나온 자개장, 시설실에 있던 장화, 이탈리아 식당의 벽등, 지하실 벽돌 등 흔적들을 모으다 보니 계단이라는 형태가 되었다. 무엇보다 미술 작가뿐 아니라 문화 예술 행정가, 의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군이 전시에 참여, 서로 협업해 의미가 크다.

“학부 시절 다른 건축가들의 작업을 보면서 토론하는 게 좋았어요.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하면 더욱 창의적인 건축이 나오지 않을까요?” 프랭크 게리의 설계가 페이퍼 아키텍처가 아닌 빌바오의 구겐하임으로 탄생한 것도 결국 구부러진 철판을 구현하는 구조 설계, 시공의 협업자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데몬demo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창작을 돕는자)’이 되어주며 동등한 존재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지금이야말로 크로스오버와 협업이 필요한 때! 건축가 이성란의 라이프스타일을 취재하면서 하나의 믿음이 생긴 건 분명하다. 그 사람이 곧 그 건축이라는 사실. 건축이 단순히 보기에만 좋은 것을 넘어 사회적 의미까지 담아야 한다는 거창한 철학을 얘기하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가치만으로 삶의 기쁨이나 환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출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8월호) ⓒdesign.co.kr